중국 현대사를 한 개인과 가족의 일대기로 그려넣은 이야기 <인생>을 영화로 본 사람이라면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대략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좋을 듯 싶다. '허삼관' 이 양반은 무식하지만
인정있고 움찔할 정도로 솔직하다.
주로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는 못하지만 인정이 많은 친구와 어울렸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소수의 영악한 아이들은 자신의 이해 타산에 따라 친구를 골라 사귀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 지금도 그렇지만 - 천성이 그렇게 이해 관계에 능란한 편이 아니라 그런 관계에 거부감이
많았다. 다만 나와 뜻이 잘 통하고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을 사귀다보니 조금 어리숙하고 착한 녀석들과
쿵짝이 잘 맞았다. 이 허삼관을 보니 어린시절 친구들이 생각났다.
전개와 구성이 복잡하고 빠른 요즘 현대소설과 달리 시간의 순서 하나 섞지 않고 우직하게
일대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는 허삼관이 일락이에게 하소용을 위해 곡을 해 주라고
설득하는 부분과 문화대혁명시 허옥란을 비난하면서 자신도 다른 여인과 몸을 섞은 것을
비난하는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결국 아들과도, 허옥란과도 묵었던 갈등을 이렇게 용서하는
장면에서 시큰시큰하면서 훈훈한 느낌이 계속 밀려왔다.
5남매 장남으로 태어난 53년생 아버지, 시골 농군으로 한 평생을 지내신 할아버지, 억척같이
가족을 이끌어오신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아이의 아비가 될 내 미래도 더듬어 보았다.
나도 저렇게 헌신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아직 나는 한 없이 어린 것 같은데, 회사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무거운 짐이 안겨지는 것 같은 요즘,
허삼관 같았던 나의 친구들도 자라서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을 생각해본다.